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문단 편집) == 선거 과정 == 총선을 앞두고 당시 한국 정계는 복잡한 정계개편 과정을 겪고 있었다. 여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새천년민주당]] [[탈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진영 분열이 일어났고, 야권은 [[한나라당]]의 [[차떼기|불법 대선 자금 수수]] 같은 대형 악재가 터지며 민심의 지탄을 받아 어느 정당이라고 딱히 선거에서 유리할게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 그리고 이런 심리적 초조함이 겹쳐져서인지, 기어코 선거 실시 한달여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자민련은 제16대 국회에서 합심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최초로 현직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을 의결하는 사건]]을 터뜨리고 만다. (관련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 소추 가결로 인해 대통령으로서 직무행사가 불능된 상태에서 [[고건 권한대행 체제|고건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하에 선거가 치러진다. [[열린우리당]]은 정동영이 당의장에 선출되면서 새천년민주당의 지지율을 따라잡았고,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근소한 차이지만 한나라당도 제치고 1위가 되는 등 최소한 총선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는 거둘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거기다 잘하면 제1당도 차지할지 모른다는 희망섞인 전망이 나오자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새천년민주당은 아직 입당도 안한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친 열린우리당 발언을[* '민주당 찍으면 한나라당 된다'고 말했다.] 가지고 선거법과 선거 공정 위반으로 [[탄핵]]을 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고 한나라당이 이에 동조하면서 선거 한달 전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사태가 벌어지고 만다. 하지만 정작 3월 가결된 [[탄핵]] 과정을 보면 소수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다수의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밀어내고 힘의 논리로 탄핵결의안을 처리하는 그야말로 다수의 횡포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하여 17대 총선 선거판 자체가 말 그대로 '''탄핵 선거'''의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들어가게 되었다. 특히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는 걸 막기 위해 격렬하게 몸싸움까지 벌여가며 저지했지만, 끝내 숫자 싸움에서 밀리며[* 참고로 이땐 동물국회가 여전하던 시절이라서 [[유시민]] 전 의원은 울며불며 저항하다 결국엔 동료 의원들에게 끌려나갔다. [[이해찬]] 전 의원도 양팔을 붙잡히며 끌려나갔다. 물론 결과론적으론 이런 모습들이 방송을 타며 국민들에게 내가 뽑은 대통령 왜 니들이 맘대로 탄핵하냐는 식의 대대적인 동정심 유발을 불러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탄핵소추안 통과를 막지 못했고, 열린우리당 의원 전원이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고 국민들을 향해 "죄송합니다."라고 사죄하는 영상이 나가자 더욱 열린우리당을 향한 동정 여론이 강해졌다. 그리고 탄핵 반대여론이 70%에 달하는 (MBC 조사) 여론에 힘입어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한나라당의 두 배 이상을 따돌리며 과반수가 확실시되는 상황이 되고 만다.[* [[손석희]] 당시 앵커가 한 "알면서 왜 하셨습니까?" 일화도 나름 유명하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될걸 알았으면서도 야권은 왜 탄핵을 추진했냐는 의도로 물은 것이지만, 사실 정확한 발언은 "그렇다면 안하면 되지 않습니까?"였다. 이때 야권이 이런 위험부담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왜 탄핵을 강행했는지는 후술 내용 참조.] 여기에 마지막에 [[개헌]]을 노리고 합류한 자민련은 가장 강력한 벼락을 맞았다. 토론회에서 당시 [[민주노동당]] 소속 [[노회찬]] 후보가 자민련 측 참석 패널의 공격을 받자 "가만히 좀 계십시오. 지금 자민련 상대할 시간 없습니다. 자민련은 어차피 선거 끝나면 없어질 당 아닙니까"라고 [[데꿀멍]]시켰을 정도. 여담으로 이때쯤부터 노회찬 의원이 각종 토론 프로에서 촌철살인이 섞인 해학적인 형식의 토론으로 인기를 끌게 된다. 지역구별 여론조사를 보면 수도권과 호남, 충청은 물론이고 당시 한나라당의 절대 우세 지역으로 손꼽히던 강남 3구와 TK에서조차 열린우리당 후보들이 한나라당 후보에게 우세를 보이거나 접전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한나라당은 최악의 경우 50석 안팎의 대참패가 예상된다는 설레발도 나올 정도였다. 물론 지역 기반을 생각하면 꽤 나간 설레발이었다. 하여튼 이런 불리한 구도 속에서 [[한나라당]]은 당시 [[박근혜]]가 주도한 천막당사 선거운동을 펼치며 선거 막판 뒷심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때 1당 독재를 막아달라는 의미로 노란색과 파란색이 균형을 이루는 일명 [[시소]] TV광고가 나오기도 했고, 아예 대놓고 잘못했으니 봐달라고 사정하는 일명 회초리 광고도 유명했다. 심지어 당 내부에선 [[김정일]]과 박근혜가 만나는 남북정상회담삘의 광고까지 고려했다고 하니(실제로 2002년에 [[16대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편지 사태|개인적으로 만났다]]) 당시의 급박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천막당사는 일종의 쇼라고 볼 수 있는게, 이 천막당사를 차린 옛 [[여의도 중소기업박람회장]] 자리(현 [[서울국제금융센터]] 자리)의 50일간 임대료는 무려 4,200만원이었다. 참고로 당시 열린우리당의 여의도 당사 건물의 월 임대료는 2,500만원이었다. 즉, 하루 임대료를 계산하면 한나라당 천막 당사의 임대료가 열린우리당 당사 임대료보다 근소하게 높았다.] 여기에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들은 투표하지 말라는 어감의 노인 폄하 발언이 구설수에 오르면서[* 이때 부산 서구에 출마했던 [[최낙정]]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증언에 따르면, 선거운동을 도저히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선발대로 나간 선거운동원들이 민심이 난리가 나 말도 못 붙이게 생겼다고 다급하게 전했지만 그래도 설마하는 마음에 연설을 시작했는데, 날아오는 배추와 욕설, 물세례까지 받고는 중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개별적으로 명함을 돌리고 있으니 "난 60대야!"라면서 면전에서 명함을 찢어버리는 사람, "아비도 모르는 XX새끼!"라면서 욕설을 퍼붓는 사람도 있었고, 젊은이들은 젊은이대로 자기 부모를 화나게 했다며 지지할 수 없다고 외면했다. 결국 시장 바닥에 아내와 같이 무릎을 꿇고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하고 빌어야 했다. 결국 그는 낙선하고 그 뒤 정계를 은퇴했다.(출처: <너무 다른, 너무 같은 두 남자 이야기>)] 선거판이 막판에 갈수록 요동쳤다. 이 여파로 정동영은 책임을 지고 선대 위원장직과 비례대표 후보에서 사퇴했는데, 어쨌든 이 노인폄하 발언이 탄핵 역풍을 다소 잠잠해지게 만들었던 것은 사실이었고 당시 한나라당은 정동영의 발언 덕분에 대참패의 위기를 벗어날 단초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2004년 4월 15일 선거가 치러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